2010년 6월 11일 금요일

비평의 산파술 7강_”국제주의”, “민중”, “민족”






비평의 산파술 6강, 꿀풀 ⓒ 풀, 서울


2010 6 12일 토요일 오후3

강사_김종길(미술비평가,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참가자_풀 편집부를 포함한30인 내외의 참가신청자

장소_1층 구기살롱


일곱 번째 재읽기 텍스트

박용숙 외, 『겨레 문화 2 민중미술평론집: 시대상황과 미술의 논리』, 한겨레, 1986

(박용숙, 김윤수, 원동석, 최민, 성완경, 유흥준, 윤범모, 최열, 김영동, 라원식 공저, 김정헌, 손장섭 엮음)

- 박용숙, 「국제주의 양식과 우리 자신의 문제의식」, 1979.4, 『공간』, pp. 112-126

- 유홍준, 「힘전사태와 민중미술」, 1985.9, 『월간조선』, pp. 207-215

원동석, 『원동석 미술평론집: 민족미술의 논리와 전망』, 풀빛, 1985

- 「민족주의와 예술의 이념」, 1975, 『원광문화』 제2, pp. 17-29

비평의 산파술 일곱 번째 재읽기 텍스트는 박용숙, 유홍준, 원동석의 비평문입니다.

현실과 발언 창립 이전인 1970년대 발표된 원동석의 「민족주의와 예술의 이념」은 80년대 이후 민중적 리얼리즘으로 이어지는 민족적 리얼리즘을 선취하고 있는 텍스트입니다. 박용숙과 유홍준의 텍스트는 이에 덧붙여 원동석, 최열 등의 일련의 비평 명맥을 잇는 80년대 미술운동의 사회와 대응하는 실천적 전망을 엿볼 수 있는 『겨레 문화 2 민중미술평론집: 시대상황과 미술의 논리』에 수록된 원고입니다. 박용숙은 원동석이 70년대 언급하기도 했던 보편주의(국제주의)에 대한 논의를 60년대 후반 한국미술계에 불었던 실험미술운동을 시대와 견주어 비판하며 이에 대항하여 이식되지 않는 스스로가 자각하는 문제의식, 현실탐구는 무엇인지 80년대 이후 화단의 상황에서 찾고자 합니다. 유홍준이 텍스트에서 거론하고 있는 힘전 1985년 아랍미술관에서 개최되었으나 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해산된 <1985, 20대의 힘> 전시를 칭합니다. 특정한 양상으로 조직화 되기 이전 생동했던 젊은 비판적 힘(움직임)과 그 새로운 미술 운동들을 둘러싼 현실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세 비평가의 텍스트를 넘나들며 국제주의, 민중, 민족에 관한 주체적 해제를 찾아가봅시다.

알려진 방법론에는 풍토적 배경, 기층사상 형성, 미학적 양식론과 그것의 다양한 역사적 해석, 그리고 공시적이고 통시적으로 대조하는 비교론 등을 열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비교의 논점은 특질의 개념이 불변의 고유성을 지시하는 정체론적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집단적 개성으로서의 본질적 성격(특성)은 역사적 여건 속에서도 다르게 발전하는 비교의 양상을 거론함으로써 그 자체가 구체적 보편성을 의미하는 특질이 된다는 사실이다. 흔히 민족미술론에 대한 오해는 예술양식이 민족이나 개인의 개성(특질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보편주의(국제주의)의 애매한 추상논리에서 비롯한다.” –원동석, 「민족주의와 예술의 이념」에서 발췌

확실히 「지우기」의 양식은 도리어 서구문명을 동경하는 추진국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미술운동이 존재해야 될 이유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주의 양식으로서의 실험미술은 적어도 추진국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화폐가 되는 것이다. 만일 이 지구의 3분의 2 이상이 후진국이라고 한다면 실험미술은 결코 국제주의 양식이라고 정의할 수가 없는것이다.” –박용숙, 「국제주의 양식과 우리 자신의 문제의식」에서 발췌

「힘」전 사태가 일어나자 도하 각 신문들은 이것이 민중미술에 대한 규제라고 보도했고 일반인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80년대의 새로운 미술운동이 곧 민중미술 운동인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한 대로 새로운 미술운동은 미술의 원활한 소통기능을 회복하고 자신과 이웃의 현실을 반영하면서 폭넓은 예술의 지평을 열고자 했던 일종의 리얼리즘 운동이었다.” –유홍준, 「힘전사태와 민중미술」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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